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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하의 詩心 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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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85
  • 2026.08.16 14:21
 
 
철책보다 먼저 피는 꽃
 
하늘시인 이영하
 
새벽의 철책에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풀잎 하나가 먼저 초록의 문을 연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 꽃이
철조망 곁에서 피어나 금지된 땅을 향해
조용히 얼굴을 돌린다.
 
나는 오래전부터 선을 지키는 일을 배웠다.
넘어서는 안 될 선,
지켜야 할 선,
끝내 지워서는 안 될 선.
 
그러나 꽃은 선을 모른다.
뿌리는 땅속에서 어디까지가 남쪽이고
어디부터가 북쪽인지 묻지 않는다.
 
바람도 그러하다.
철책을 돌아가지 않고
그 위를 넘어 두 산의 풀잎을 한꺼번에 흔든다.
 
그날 나는 알았다.
우리가 언젠가 건너야 할 것은
철책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세워 놓은
오래된 벽이라는 것을.
 
오늘도 꽃은
철책보다 먼저 피어난다.
 
 
<시작 노트>
이 작품은 분단의 상징인 철책과 그 곁에서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피어나는 꽃을 마주 세우면서 시작했습니다.
철책은 인간이 만든 경계입니다. 그것에는 역사와 전쟁, 안보와 희생이라는 무거운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반면 꽃과 풀과 바람은 그런 경계를 알지 못합니다. 뿌리는 남과 북을 구별하지 않고, 바람은 철책을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철책을 단순히 부정적인 대상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넘어서는 안 될 선, 지켜야 할 선”이라는 구절을 통해 오랫동안 국가의 하늘과 경계를 지켜온 사람의 책임을 먼저 인정했습니다.
그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젠가 우리가 넘어야 할 것은 물리적인 철책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굳어진 벽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지막의 “꽃은 철책보다 먼저 피어난다”는 문장은 분단을 넘어서는 희망을 직접 외치지 않고, 자연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보여주는 작품의 핵심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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